오랜만에 슈가슈가룬을 봤다.
난 왜 항상 시험기간이나 공부를 해야할 때에 옛날 애니를 정주행하면서 감성에 잠기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매번 시험기간 때 마다 덕심이 피크를 찍는것 같다.
코난도 그러다가 재입덕 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어릴때 tv에서 방영해주는대로 봤던 터라 드문드문 기억나는게 전부였고, 내 기억속에는 조각모음하듯이 그 알음알음 기억나는 걸 이어붙인 게 전부였기 때문에, 각잡고 보는건 거의 처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옛날에 봤던 애니를 다시한 번 본다는 건 그때 봤던 감상과 어른이 된 지금 다시 본 감상이 다르기에 그 차이를 느끼면서 내가 그때와 지금 얼마나 가치관과 생각이 달라졌고 성장했는지 알수있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성장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오히려 성장이라기 보다는 어두운 사회에 찌든 어른의 눈으로 봤을때의 감상에 가까운것 같다.
어릴 적에 슈슈룬을 봤을 때는 쇼콜라보다 바닐라한테 좀더 이입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소심하고 숫기없고 말이 적은 편이어서 그런지, 아니 소심하다는 것 조차 사람들이 나를 봤을때 기대하는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그 모습에 부응하려고 나는 애써 착한척 연기를 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활달하고 대인관계가 좋은 친구들을 내심 질투하고 조금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린 생각이었다. 내가 소심하고 내향형 인간이기 때문에 대인관계에 불리하고, 불행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했고 난 고립된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서 챙겨주는 이가 한명쯤은 있었고, 그게 친구이든 가족이 되었든 내가 어딘가에 의지했다는 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또한 소심했던 내 모습 마저도 나의 모습이고, 가장 중요한건 나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았다. 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한 결과였기 때문에, 그걸 깨달은 지금은 과거를 인정하고 그랬었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그 당시에는 조용하고 소심한 내 모습을 인정하지 못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기에 좁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니 그저 뒤틀리게 보였던 것이었다. 바닐라가 가졌던 두려움과 노여움, 분노와 질투는 대부분 본인의 내면이 만들어낸 것이었고, 사실 주변 사람들이 특별히 괴롭히거나 하는것도 아니었다. 작중 쇼콜라와 바닐라는 초등학생이지만, 난 청소년기와 사춘기의 모습이 드리워졌다. 바닐라가 쇼콜라처럼 활발하고 당찬 모습을 부러워 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건 본인이 바꾸려고 하는 의지보다 그대로 살고싶은 의지가 더 강하다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타인을 끊임없이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이런 비합리적인 역설 조차도 초등학교 중학교 무렵에는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였기에 그게 옳다고 믿었다.
두개의 하트를 가지고 있던 피에르를 정화해주는 쇼콜라의 모습을 보면서 사회에 뒤섞여서 인간과의 정을 잃어가는 내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회사에 처음 입사했던 신입의 나날들.. 사회에 보탬이 되고 주체가 되도록 모두를 위해 일했지만 세상은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았고 나를 향한 시기와 이간질을 겪었다. 그러면서 깎이고 깎여 더이상은 사람한테 정을 줄 수 없을 것 같았을 무렵, 정말 선하고 좋은 사람들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 내 마음을 헤짚어놓고 갔다. 그렇게 잃어버렸던 인류애와 사랑을 채우고.. 또 몇번의 인간관계 트러블, 또 그리고나서 나를 치유해주는 몇 안되는 기억 덕분에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거라고 여기고 있지만, 어쩔때는 왜 이렇겍 내 마음에 문을열고 들어와서 착하게 대해주지? 난 그런 친절을 베풀만한 사람이 아닌데, 차라리 다 거지같이 대해주면 일관적으로 사람에 등지고 벽을 쌓고 살텐데, 왜 나한테 친절하게 대해주는걸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지금도 불가사의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니까... 싶기도 하다만 결론적으론 그렇게 선한 사람들이 있기에 나도 선한 마음을 품고 살아갈수 있는게 아닐까 싶다. 내가 100% 선하다는건 아니지만 말이다.
쇼콜라가 흑화한 바닐라의 검은 하트를 정화해 주고 하얀색 하트가 되었을 때, 어떻게 보면 인간에게 느끼는 노여움과 분노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나를 지키려면 혐오감과 두려움, 분노의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 안된다. 또 내가 좋아하는 다른 사람을 지키려면 말이다. 내 스스로 컨트롤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원초적인 아기의 본능을 가지고, 숨기며 살아간다. 핑크색 하트처럼 나를 향해 선한 영향력을 안겨주는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그 모든 감정들이 뒤섞여서 어쩔땐 혼란스럽고 어쩔땐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어쩔 땐 이 감정, 다를땐 저 감정.. 다채로운 감정은 생각을 더 깊어지게 만들고 성장하게 만든다.
어릴 때 보았던 동심의 세계는 어른이 된 지금 다시 보았을 때 나에게 철학적인 주제를 던져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 묘미로 계속해서 고전애니를 찾아서 보는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원작을 찾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애니메이션 한 작품을 본다는 건, 내 머릿속의 공간을 한 차원 더 늘려주는것 같다. 다음은 또 뭘 다시 정주행할지 기대가 된다.